델가디나 作, 샐러드 데이즈
블로그에 평가글을 올릴 때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팬픽이든 로맨스소설이든 미완결작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연재작일 경우, 완결이 나기까지 완성도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연재중단이 된 작품은 말할 것도 없다. '재미없는 작가는 용서해도 연재중단하는 작가는 용서 못한다'는 어구를 맘 속에 품고 사는 나 같은 소인배에게 연재중단작은 애증의 대상이랄까. 특히 재미없는데 연재중단하면 그러려니 하겠건만,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연재중단을 하면 독자로서 땅바닥을 구르게 된다. 상상의 나래를 펴기엔 상상력이 빈곤하고, 작가를 독촉하기엔 염치가 없는 탓이다. 길게 말했지만 한 마디로 샐러드 데이즈는 연재중단작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다이나믹한 사건으로 연결된 팬픽이라기보다는 잔잔하게 서술하는 느낌이라 줄거리를 한 마디로 전개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이렇다. 정말 소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아이 같고, 순수하고, 좀 백치미가 넘치는 태민, 말은 없지만 청소년다운 방식으로 태민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 나름의 가오(!)를 지니고 있는 전학생 민호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를 종현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글 속의 종현은 민호의 친구이면서 태민을 먼저 좋아한 인물.
본디 내 취향은 다이나믹한 에피소드가 빵빵 터지면서 집착과 애증과 정욕이 들끓는, 작가가 글 속 캐릭터와 독자를 괴롭히는 글이다. 그런 내 입장에서 샐러드 데이즈는 평소에 불닭만 먹던 내가 누룽지탕을 만났을 때의 안정감과 휴식기를 제공해주었달까. 이 작가의 팬픽 역사가 어떻게 되는 지는 몰라도 이전에 팬픽을 쓴 경험이 있다면 이해가 될 만큼 깔끔한 문체였고, 샐러드 데이즈가 첫 작품이면 꽤나 수작이다 싶었다. 샤이니 멤버에게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잘 뽑아냈고 장르 설정도 잘했다.
이 작품의 최대 강점은 종현을 화자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태민을 먼저 알고 있다는 종현의 설정은 민호가 모르는 태민의 존재와 역사를 독자에게 알려줄 수 있고, 민호와 같은 반 단짝친구라는 입장은 민호의 동선과 감정을 표현하기 좋다. 그것뿐이던가. 민호와 태민의 첫 만남은 생략되고 민호와 종현과의 대화에서만 서술되어 독자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종현이 화자이다보니 민호와 태민의 불순한 씬을 작가가 상세히 묘사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샐러드 데이즈 전체적으로 흐르는 순수한 분위기를 해치지도 않는 효과 하나, 구구절절 설명해주지 않으니 불순한 독자들을 애끓게 만드는 효과 둘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글은 종현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이 되는데 중간중간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하지만 그 현재 상황이라는 것이, 민호와 태민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식의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 중에 암시한다. 독자 입장에선 이렇게 순수하게 사랑을 키워가는데 왜 이 둘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거지? 와 같은 물음을 가지고 팬픽을 쭈욱 읽게 되는 것이다. (나만 그랬나?)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23편 이후로 연재중단. 한 18편 이후로 작가가 탄력을 좀 잃어가는 듯하더니 연재가 오랫동안 중단되었고, 다시 재개하는가 싶더니 결국 23편에서 멈춰버렸다. 그래도 청천벽력과 같은 연재중단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연재중단이긴 했다. 이전까지는 스토리가 잘 이어지더니 18편부터 계속 민호의 집안 비밀을 가지고 질질 끄는 기색이 엿보였던 것이었다. 비밀을 폭로하든가, 아니면 비밀을 잠시 미뤄두고 독자들을 한눈팔게 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끌어왔어야 하는데 계속 민호의 수상한 모습만 보여주고 분량도 점점 짧아지니 불안할 수밖에. 뭐 얼마나 대단한 비밀이길래 이렇게 애를 태우나 싶었다. 별 거 아니면 그냥 팍 말해야 하고, 별 거라면 정말 엄청난 비밀이어야 하는데. 내 짧은 소견으로, 오래 끌 법한 비밀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마 그 때 민호의 집안 비밀 전개를 탁 치고 나갔으면 샐러드 데이즈의 완결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작가가 투민(민호X태민) 팬픽계의 기반이자 거성으로 자리잡았을지도.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연재하는 동안 꼬박꼬박 챙겨보며 코멘트도 달 만큼 응원했던 팬픽이었다. 샤이니의 20대 팬픽 사이트 썬샤인에서 활동하던 작가를 따라서 투민가든이라는 홈까지 갔건만 투민가든이 기어이 닫힌 걸 보고 참담한 기분을 감추지 못해서 쓴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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